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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金炳泰

1860 ~ 1908.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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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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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충북 단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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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1860년에 태어났고, 출신지와 성장과정은 알려진 바 없다. 1907년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일대에서 의병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은 광무황제(고종)가 강제 퇴위를 당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에 의한 식민지화가 가시화되자 전국에서 항일의병이 일어났다. 단양군의 경우 1906년의 홍주의병과 1907년 원주진위대의 봉기가 충북 제천군(堤川郡)에서 거의한 이강년의 활동과 결합하면서 이 지역의 많은 사람이 의병에 참여하였다. 단양군 영춘면(永春面) 보발리(寶發里) 출신 김규철(金奎喆)이 대표적이다. 김규철은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이명상(李明相)과 함께 봉기하여 단양·청풍·충주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김규철의 의병부대는 1908년 9월 죽령(竹嶺)에서 400여 명을 인솔해 적과 전투, 5번 승전하고 한 차례 패전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1907년 단양군 동면(東面) 구미(九味)에서 의병연락책으로 활동하다가 영천경찰분서(榮川警察分署)에 붙잡혔는데, 어느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같은 해 11월 탈출하였다. 1908년 6월 30일 충북 단양군 동면 성금동(成金洞)에서 풍기수비대(豊基守備隊) 및 풍기주재소(豊基駐在所) 소속의 토벌대에 의해 윤호섭(尹虎燮)과 같이 붙잡혔다. 다시 탈출을 시도했지만 도중에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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