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
金鳳樹1881. 9. 9 ~ 1908. 1.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호남창의회맹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기삼연 의병부대)
- · 일심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1년 9월 9일에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남면(南面) 녹진(鹿津)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유생 출신으로 김봉회(金鳳檜)라는 이명(異名)을 사용하였다. 1906년 복수토적(復讐討賊)을 기치로 기삼연과 김용구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일심계(一心契)에 참여하였다. 일심계는 매달 계원 모임을 통해 거의 협의와 동조 세력 확대를 도모하였다. 이때 일심계원과 뜻을 같이한 인물들은 대부분 노사 기정진 계열의 유생이었다. 따라서 기정진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되자 일심계원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10월 30일 전남 장성에서 기삼연의 주도로 의병 연합 부대인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가 결성되었다. 이때 동생 김봉훈(金鳳勳), 김봉훈의 처남인 박준기(朴準基)와 함께 합류하였다. 여기서 서기 겸 참모에 임명되었고, 동생 김봉훈은 총포수로 임명되었다. 호남창의회맹소는 조직을 정비하고 의병을 모집한 뒤, 1907년 10월 말부터 항일 전투를 치열하게 전개해나갔다. 1908년 1월 호남창의회맹소의 맹주 기삼연이 순창에서 일본군 토벌대에의 기습을 받아 체포된 후 총살을 당하였다. 기삼연 사후 호남창의회맹소는 다시 김용구와 김준 등 몇몇 지도부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부대를 나누어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소규모 단위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이동하면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펼쳤다. 1908년 (음)1월 19일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탑정리(塔亭里)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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