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학
金鳳鶴미상 ~ 1908
관련 단체
- · 조병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출생 일시나 출생 지역에 대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1908년 1월 경무국에서 조사한 「폭도 수괴조(首魁調)에 관한 건」에 관한의 기록에 따르면 충청남·북도에서 활동한 조병진(曺秉軫) 의병부대에서 이중봉(李重鳳)·원철상(元哲常)·신학(申㰒)·김명선(金明善)·박용구(朴瑢九)·정빈(鄭濱)·노봉돌(盧奉乭) 등과 함께 간부로 활약하였다. 조병진은 1908년 1월 4일 충북 연풍군(延豊郡) 현남면(縣南面) 입석암(立石岩)에서 전투 중 일본군 순검대에 체포되었고, 같은 해 10월 귀순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귀순자 명단에 이름은 보이지 않으며, 이후 행적도 확인되지 않아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1908년 1월 13일 작성된 「폭도 및 화적(火賊) 투입자(投入者)에 관한 건」에도 이름이 확인된다. 당시 28세의 나이로 경상북도 흥해군(興海郡) 기계면(杞溪面) 인비리(仁庇里)에 거주하였으며, 정환직(鄭煥直)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의병장인 정환직은 1887년 44세의 나이로 과거의 급제한 이후 동학농민전쟁 당시 선유사(宣諭使) 겸 토포사(討捕使)를 역임하였고, 1902년에는 중추원 의관 등 여러 관직을 거친 인물이다. 정환직은 1906년 아들인 정용기(鄭鏞基)가 영천에서 의병부대를 일으킨 이후 1907년 10월 8일 일본 수비대와의 전투 중에 사망하자, 그에 대한 원수와 군부의 원수를 갚으려고 참여하였다. 이후 아들을 대신해서 의병장이 되었다. 하지만 정환직 또한 12월 11일 일본군 수비대에 의해 체포되었고, 대구로 호송되던 중 사살되었다. 정환직 부자가 이끌던 의병은 이후 최세윤(崔世允)이 이어받아 1908년 7월 붙잡힐 때까지 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이를 ‘산남 의병부대’라 한다. 정환직이 사망한 이후 일본군에 의해 붙잡힌 것으로 보인다. 위의 두 문서에 기술된 이름이 동일인물인지는 자료가 부족하여 현재는 확인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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