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金成奎187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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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72년경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풍덕면(豊德面) 추동리(楸洞里)에서 태어났다. 평남 북부에 위치한 덕천군은 본래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으나, 1937년에 평원선(平元線)·만포선(滿浦線)·서선중앙철도(西鮮中央鐵道) 등이 개통되면서 무연탄을 캐는 평양 북탄전(北炭田)의 중심지대로 부상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날 무렵에는 교통이 불편한 벽지였던 덕천군의 독립 만세 시위는 덕천면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덕천면의 만세 시위는 천도교계와 기독교계의 연합으로 일어났다. 덕천 천도교 대교구의 공선원(共宣員)으로 일하고 있는 현성재(玄聖才)가 덕천면에 자리하고 있는 덕천교회(德川敎會)에 연락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다. 제일 먼저 3월 5일에 덕천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는 김사진(金泗振)과 방효준(方孝俊)이 이끌었다. 여기에 안승국(安承國)을 비롯하여 덕천면에 사는 강태일(姜泰一)·김완억(金完億)·송창해(宋昌海)·양의근(楊義根)·이인화(李仁化)·장두남(張斗南) 등과 함께 가세하여 시위 준비를 하였다. 3월 5일 시장에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30여 명이 모였다. 독립선포식에서 김사진과 방효준은 만세 시위의 분위기를 고취하는 연설을 하였다. 시위대가 행진하면서 숫자가 늘어 100여 명을 헤아렸는데, 이들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양의근의 선창 아래 독립 만세를 불렀다. 김현수(金現洙)·이용규(李龍奎)·이광수(李光洙) 등이 100여 명의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연호하면서 행진하였다. 헌병분대 앞에서는 이용규의 선창에 따라 다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때 헌병분대에 체포당해 구금 중이던 김정기(金正基)·변사민(邊士敏)·이병주(李炳疇)·이응각(李應珏)·장두남(張斗南)·장찬봉(張燦鳳)·허선홍(許善弘) 등이 시위대의 만세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탈출하여 시위대에 가담하였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선고받은 후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태 90도를 선고받자 ‘민족자결의 시대를 맞아 독립의 마음을 갖고 있는 한민족으로서 당당하게 만세를 부른 것인데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대를 선고한 것은 공정한 선고라 할 수 없다’라고 항변하며 상고하였다.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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