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
金聖源187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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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872년경 평안남도 양덕군(陽德郡) 온천면(溫泉面) 상국리(上菊里)에서 태어났다. 양덕군의 첫 독립 만세 시위는 천도교인에 의해 일어났다. 온천면 상청리(上淸里)에 사는 천도교 양덕교구장 이영화(李永華)는 1919년 2월 하순 평양에서 열린 대교구장 회의에 참석하였다가 서울에서 김상열(金商說)을 통해 보내온 독립선언서 중 100여 장을 받았다. 3월 1일에 귀향하여 대구면(大救面)·상룡면(上龍面)·하룡면(下龍面) 등을 돌며 천도교 지도자들과 독립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3월 3일에는 양덕면(陽德面) 상석리(上石里)에 있는 천도교 양덕교구에서 만세 시위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거사일은 3월 4일 양덕면 장날로 정하였다. 3월 4일 오전 5시 수천 명의 시위 군중이 양덕 천도교구 앞에 모여 거행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다. 이학근(李學根)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시위대를 따라 헌병대가 있는 하석리(下石里) 방면으로 행진하였다. 헌병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제지하다가 결국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헌병의 발포로 20명이 사망하였고 7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되어 곽치현(郭致鉉)·김병술(金炳述)·박응모(朴應模)·이영화·조정화(趙鼎華)·최기창(崔基昌) 등 30여 명과 함께 기소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그러자 ‘국권침탈 이후 매일 한국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바, 건국 4252년을 맞아 한국 독립을 기회를 얻게 되어 비로소 한민족으로서 마땅히 독립 만세를 힘껏 부른 게 왜 보안법 위반이냐’라고 항변하며 상고하였다. 1919년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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