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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영

姜甲永

1907. 6. 7 ~ 1945.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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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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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山淸)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산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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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부산최고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907년 6월 7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삼장면(三壯面) 덕교리(德橋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강현영(姜顯永)이다. 광주학생항일운동 이후 전라남도 지역으로 잠입하여 조선공산당 해체로 침체되어 있던 비밀결사 활동을 하였다. 1930년 말경 광주에서 안종익(安鍾翊)·김재동(金載棟) 등과 함께 노농대중적 기초의 확대와 강화를 위해 적색노동조합, 적색농민조합 등을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1931년 1월에는 사회과학연구소(社會科學硏究所)를 결성하였다. 이 활동과 기존 전남 지역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에 기반하여 1931년 12월경 전남 지역 사회운동의 통제 기관인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가 탄생하였다. 이후 부산에서 박귀선(朴貴先)을 만났다. 박귀선은 노동자 계층에 의한 공산주의 사회 실현과 그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며 김시용(金時用)·김태영(金台榮)·김병철(金炳哲) 등과 함께 부산최고협의회(釜山最高協議會)를 결성, 국제적색노동조합(國際赤色勞動組合) 전선협의회(全鮮協議會)와 연락을 취하며 활동을 펼쳤다. 1931년 8월 26일 부산 곡정(谷町, 현 부산시 아미동)의 전영진(田永鎭)의 집에서 「노동자」라는 제목의 격문을 박귀선과 함께 기안하였다. 그 내용은 “불공평한 현 사회를 근본부터 파괴해야 한다. 전 자본가와 경찰에 대하여 싸울 혁명적 노동자를 선두로, 농민·소시민 등 모든 압박받는 층은 당당히 동맹을 조직하여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여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완성된 격문을 이인형(李麟炯)이 등사판으로 인쇄하였으며, 부산 지역 공장 노동자 및 일반인에게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1931년 11월 14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에 처해졌다. 이 판결에 대해 항소하여 1932년 3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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