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순복

金順福

188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순복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순흥(順興)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순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소모장(趙召募將)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경상북도 순흥군(順興郡) 용암면(龍岩面) 도봉동(道峰洞, 현 영주시 부석면)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일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1908년 재판 당시 20세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1889년생으로 추정된다. 집안 배경 및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재판 기록에는 직업이 농업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진술 내용에는 장사를 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조소모장(趙召募將)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의병부대를 이끌었던 조소모장(趙召募長)이라 칭해지던 의병장의 인적사항에 대해서는 자세히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강원도 영월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영월 인근 출신으로 보이며, 소모(召募)라는 직책으로 불린 점으로 보아 다른 부대에 소속된 소규모의 의병부대를 이끈 인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조소모 의병부대의 규모는 대략 수십 명으로 총 20자루, 칼 2자루로 무장한 채 강원도 영월 주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조소모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시작한 1907년 8월경은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해산됨에 따라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1907년 (음)9월경까지 조소모 의병부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이후 의병부대를 나와서 다른 사람의 고용인으로 들어가 은신하며 지냈다. 그러나 1908년 말 헌병보조원에게 신분이 탄로나 결국 체포되었다. 1908년 11월 13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폭동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