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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준

金若濬

1896 ~ 194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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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약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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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이원(利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이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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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독립단 이원지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96년경에 태어났다. 단 다른 자료에 따르면 1897년 1월 4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남면(南面) 송단리(松端里)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1919년 당시에도 거주하고 있었다. 종교는 천도교이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원군의 만세 운동은 동면(東面) 의덕리(儀德里)의 이도재(李道在)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도재는 1919년 3월 7일경 서울에서 온 기독교인 박용해(朴龍海)로부터 독립선언서 1매를 전달받고, 곧바로 서면(西面)에 있던 천도교 이원교구로 가서 교구장인 김병준(金秉濬)을 만나, 이원군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하는 문제에 관해 논의하였다. 김병준과 이도재는 공시우(孔時祐)·박승룡(朴承龍)·장홍규(張弘圭) 등 이원 지역 천도교 중심인물 13인을 소집하여,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이원지단(利原支團)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서면의 장날인 3월 10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만세 시위 준비를 위해 천도교 이원교구당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 500여 매를 등사하는 한편, ‘우리들 한국 민족은 세계의 대세에 따라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2천만 동포에게 이를 알린다’라는 내용의 격문도 100여 매를 작성하여 장터 인근의 가가호호에 배포하였다. 또한 인근 지역으로 사람들을 파견하여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3월 10일 서면 남문리(南門里)의 장터에는 7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때 김병준·박승룡·김중삼(金仲三)·김창렬(金昌洌)·염처학(廉處學)·최병원(崔秉元)·장홍규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박승룡의 사회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자, 선두에 서서 시위대와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깃발을 흔들었다.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출동한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주동자 6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는 혐의로 일제 헌병에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제기하였지만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결국 미결기간을 포함하여 1년여 동안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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