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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형

金時馨

1894. 2. 2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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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시형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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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용천(龍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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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광복군사령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4년 2월 22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양광면(陽光面) 학현동(鶴峴洞)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성병(金性炳)이고, 모친은 박춘자(朴春子, 밀양)이다.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1900년부터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1905년부터는 의주군(義州郡) 월화면(月華面) 주음동 국동(菊東) 조병준(趙秉準)의 증곡재(曾谷齋)에서 성리학과 경의학을 배웠다. 스승인 조병준은 평북 창성지방의 의병장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고 대한독립단 총참모, 평북독판부 독판, 광복군참리부 참리부장을 역임한 후 내몽골 바오터우(包頭)로 이주하여 독립운동 기지인 배달농장(倍達農庄)을 건설하는 한편, 의민부(義民府)를 설립한 인물이다. 본래 평안도 지역의 거유(巨儒)인 박문일(朴文一)의 제자였던 조병준은 그의 항일 행적에도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15년경부터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1919년 3·1운동 때 용천군 양광면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선도한 다음 일제의 체포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만주 콴뎬현(寬甸縣)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 총참모(總參謀)였던 스승 조병준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 기관인 평북독판부(平北督辦府)의 독판(督辦)으로 선임되고, 민국독립단의 도총재로 추대됨에 따라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국독립단의 교통부장과 평북독판부의 참의(參議)를 겸임하였다. 이후 임시정부 내무부 소속으로 서간도 교민들의 민정(民政)을 관할하는 기관인 광복군참리부(光復軍參理部) 소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 5일 광복군사령부 제3영장 겸 소모국장(召募局長)인 홍식(洪植)과 압록강을 건너 평북 용천군 양광면으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출동 중 일제 경찰과 교전하다가 좌측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고 체포되어 평양형무소에서 5년 간 복역하였다. 이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936년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톈진(天津)·베이징(北京)·타이위앤(太原)·바오터우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1937년부터는 김승학을 책임자로 하는 임시정부 베이징 주재 비밀기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광복 후 서울에서 독립신문사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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