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姜敬熙191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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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912년경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대흥면(大興面) 교촌리(校村里)에서 태어났다. 대흥면 손지리(遜支里)에서 야학 강사를 하던 중,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자 이에 대항하여 대흥공립보통학교(大興公立普通學校) 학생들에게 동맹휴학 또는 만세시위운동을 하도록 권유하였다. 1930년 2월 10일경 예산군 대흥면 손지리에서 함께 야학 강사를 하던 김만복(金萬福)이 광주학생사건에 대한 일제 당국의 조치를 비난하면서 “각지의 조선인 학생이 동맹휴교 혹은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어찌 대흥보통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공감하여 그해 2월 중순부터 3월 초순 사이에 대흥공립보통학교 6학년생 강성희(姜星熙), 신화균(申和均), 윤소현(尹召鉉), 배덕근(裵德根) 등에게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이로써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에 대항하여 동교에서도 동맹휴학이나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도록 권유하였다. 이에 따라 같은 해 3월 11일 대흥면 동서리(東西里)에 있는 산에서 윤소현·김창환(金昌煥)이 동교 6학년생 20명을 규합하여 일제 당국의 조치를 비난하면서 만세를 선창하자 모두 이에 가세하는 만세 운동을 벌였다. 또한 학생들은 학교 시험에서 백지(白紙) 답안(答案)을 제출하고 동맹휴학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예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1930년 3월 28일 강찬희(姜贊熙)·김만복·조병언(趙炳彦)과 함께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으로 송치되었다가, 4월 8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예심(豫審)에 회부되었다. 그 결과 조병언과 함께 면소(免訴) 판결을 받았으며, 강찬희와 김만복만 공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판결에 불복하여 검사가 경성복심법원에 항고하였으나, 1930년 9월 4일 경성복심법원 형사부에서 항고가 기각되고, 역시 면소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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