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金東湜1892. 4. 2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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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92년 4월 24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주북면(朱北面) 운곡동(雲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연통제(聯通制)를 설치해 국내와의 연락기반을 넓히고자 하였다. 임시정부는 전국을 13도 12부 215군으로 나누고 도(道)·군(郡)·면(面)에 감독부(監督府)·통감부(總監府)·사감부(司監府)를 두었다. 감독부·통감부·사감부에는 각각의 감독과 재무 책임자를 임명해 군자금 모집과 각 관청 및 군대 상황 등 정보수집의 임무를 맡겼다. 1919년 9월 경 함경북도 회령야소교회(會寧耶蘇敎會)의 서기 김인서(金麟瑞)는 교회를 통해 연통제 문서를 수령한 뒤 박원혁(朴元赫)·박관훈(朴寬勳)과 감독부·통감부·사감부의 설치를 논의하였다. 박원혁이 나서 노춘섭(盧春燮)을 통해 경성(鏡城) 이상호(李相鎬)에게 연통제 설치와 관련된 문서를 전달하고 경성에 기관을 설치하도록 지시하였다. 노춘섭의 지시를 받은 후 경성읍내(鏡城邑內) 승암동(勝岩洞) 송완섭(宋玩燮)의 집에서 정두현(鄭斗賢)·이운혁(李雲赫)·장창일(張昌逸)·송관섭(宋瓘燮)·송윤섭과 함께 연통부 설치를 추진하였다. 그 자리에서 이상호가 경성 총감부 총감으로, 전재일이 부총감으로, 송윤섭이 총무가 되고, 정두현은 경성군 오촌면(梧村面) 사감(司監), 송관섭은 재무로, 최붕남(崔鵬南)은 경성군 주을온면(朱乙溫面) 사감, 최병학(崔秉學)은 경성군 주북면 사감, 석인욱(石麟郁)은 경성군 나남면(羅南面) 사감, 이영순(李永順)은 경성군 용성면(龍城面) 사감, 이희복(李熙馥)은 경성군 어랑면(漁郎面) 사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사감에 임명된 사람들이 실제로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아 회의 참석자들이 직접 그들을 찾아가 선출 사실을 통보하고 활동을 권유하기로 하였다. 이때 주북면 곡동 자택에서 최병학·최형욱(崔衡郁)·최종일(崔宗一)·최학남(崔鶴南)·엄동헌(嚴東憲)·장병일(張丙日)·이춘백(李春白) 등과 함께 사감부 설치를 논의하였고, 이후 어랑면의 이희복을 찾아가 사감에 선출된 사실을 알리고 활동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1919년 9월 평안남도 특파원 유기준(劉基峻)의 체포로 연통제의 실체가 알려지면서 일제의 조사, 단속이 강화되었고, 연통제 관련 인물 47명이 체포되었다. 소위 함경북도 연통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1920년 1월 체포되어, 그해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동년 1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3년 11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23년 10월 27일 출옥하였다. 1929년 『동아일보』 경성지국장(鏡城支局長)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30년 2월 사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양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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