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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金炳權

1891. 8. 20 ~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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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권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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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신남면 고토리 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1891년 8월 20일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기곡면(岐谷面) 상직리(上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장진군(長津郡) 신남면(新南面) 고토리(古土里)의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장진군의 만세 운동은 다른 함남 지역에 비해 시기적으로 늦은 편인 1919년 3월 14일 시작되었다. 이는 장진군이 함남 서북부 내륙인 개마고원(蓋馬高原)에 위치해 있어, 부전령산맥(赴戰嶺山脈)의 황초령(黃草嶺)을 넘어야 함흥(咸興)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3월 14일 오후 4시 장진군 신남면 고토리 수시(水市)에는 고토리와 인근 지역인 만풍리(萬豊里)·신중리(新中里)·신하리(新下里)·신흥리(新興里)·중흥리(中興里) 등에서 200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때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고토리의 헌병주재소로 향했고, 헌병주재소 앞에 집결하여 더욱 소리 높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연락을 끊기 위해 주재소로 들어가 함흥과 장진을 연결하는 전화선을 절단하였다. 헌병이 몽둥이와 칼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였지만, 시위대는 헌병들의 탄압에 맞서 더욱 격렬하게 대항하였다. 시위대가 주재소 안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헌병의 발포로 인해 2명이 사망하였다. 전신 시설이 파괴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라, 헌병보조원 1명은 주재소를 탈출하여 헌병대로 달려갔다. 탈출한 헌병보조원은 헌병대에 헌병 하사 1명과 헌병보조원 2명, 그리고 보리 수매를 위해 함흥군에서 파견된 창고 근무 계수(計手) 1명이 행방불명되었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이에 하갈우리헌병주재소(下碣隅里憲兵駐在所)는 고토리로 헌병들을 급파하였다. 파견된 헌병들은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200여 명의 시위대 가운데 1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김면숙(金冕淑)·김상락(金尙洛)·윤복민(尹福民)·이규연(李奎淵)·이병찬(李炳燦)·이우승(李愚昇)·최안재(崔安在)·한계유(韓啓維), 한면각(韓冕珏), 한승풍(韓承豊)·한영태(韓永泰)·한창혁(韓昌赫)·한태제(韓泰濟)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불복하여 항고하였으나 8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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