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실경
金實經1887. 5. 23 ~ 1959. 1.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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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7년 5월 23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현 안동시)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이명은 김영진(金榮鎭), 자는 성중(成中), 호는 죽차(竹此)이다.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동 편항장터(鞭巷)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중평동 편항장터 만세 시위는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旭) 등이 주도하였다. 3월 15일 이들은 편항장터 동쪽 공동 타작장에 모여 3월 21일 장날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정하고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3월 21일 오후 1시 쯤 지나 편항장터에서는 기독교인 10여 명이 독립 만세를 불렀다. 오후 2시쯤 10여 명의 주동자가 장터 가운데 등장하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유연성이 만세 운동의 당위성을 연설하자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때 시위 군중과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5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이를 제지하고 있었던 우치다(內田) 순사가 주재소로 몸을 피하자 그곳으로 몰려갔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들어가 무기를 빼앗고 서류를 파기하였다. 또한 우물 옆에 비치된 소화기를 망가뜨리며 기세를 북돋웠다. 시위대는 우치다 순사와 권태석(權泰奭)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오후 5시 경에는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다음 날 새벽 2시에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안동경찰서로부터 급파된 순사부장 1명, 수비대 군인 8명이 도착하여 체포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1919년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8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을 취소하고 2년 형으로 가중 선고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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