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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玩

永玩

1896. 7. 4 ~ 1919. 12. 1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永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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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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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고창군 무장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6년 7월 4일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茂長面) 무장리(茂長里)에서 김양현(金亮鉉)의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사립 무장학교(현재 무장초등학교)를 다녔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며 무장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김상수(金相洙) 등과 함께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을 참관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3월 1일 서울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귀향하여, 같은 마을의 이용욱(李用郁), 김용표(金容杓), 김상수, 이준구(李俊久) 등 유지들과 만나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정황을 전하였다. 그리고 3월 15일 무장읍내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오후 미리 장날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太極旗)와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나누어주고, 모여있는 군중들 앞으로 나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대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자 군중들이 따라 불렀다. 이용욱, 김용표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문(南門)을 지나 면사무소와 무장경찰관주재소(駐在所)로 행진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시위대가 해산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다가 1919년 12월 6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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