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金榮在1879. 6. 26 ~ 1933. 7.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진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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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9년 6월 26일 경상남도 진주군(晉州郡, 현 진주시) 금곡면(金谷面) 동례리(東禮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금곡면사무소(金谷面事務所)에서 서기로 근무하였고, 진주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은 1919년 3월 18일 진주읍 장날 만세시위로 시작하여 19일·20일로 이어졌다. 진주군 금곡면 면서기로 사태를 주시하던 중 3월 22일 밤 금산면(琴山面) 가방리(伽芳里)에 사는 이교륜(李敎倫)과 비밀리 도모하여 대규모의 독립운동을 준비하였다. 우선 독립만세운동에 주민들의 참가를 종용하는 격문을 작성하여 진주군 각 면의 요소에 게시하고, 면장이나 이장에게 이를 발송하여 주민을 이끌고 모이면 진주읍내에서 독립운동을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격문은 「조선독립완문(朝鮮獨立完文)」과 「조선독립방의뢰(朝鮮獨立方依賴)」라는 제목으로 7장과 10장을 각각 작성하였다. 조선총수비대장인 박모(朴某) 명의의 「조선독립완문」은 “조선을 13도로 조직하고 만민(萬民)을 설득하여 충성을 권하며 외국에게 모욕·멸시당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조선독립방의뢰」는 “각 마을 구장은 각자 민중을 소집하여 이끌고 진주 읍내로 나와 같이 독립만세를 부르자”는 내용이었다. 격문 중 「조선독립완문」은 이교륜이 윤영신(尹永臣)과 함께 3월 22일 밤부터 23일 아침까지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 앞 전신주와 중요한 곳에 붙였다. 「조선독립방의뢰」는 3월 23일 낮 직접 가지고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평거면(平居面), 집현면(集賢面), 대평면(大坪面) 등 각 면의 면장 앞으로 발송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가중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21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최종 기각·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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