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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선

姜大宣

1897. 1. 4 ~ 1928.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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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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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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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애국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1월 4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성송면(星松面) 무송리(茂松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강훈이다. 1919년 5월 고창군의 신창학교(新昌學校)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 일명 철원애국단) 단원 김영식(金永植)에게 군자금을 모아야 하는 취지를 듣고 같은 해 8월 상경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이 결성한 단체로, 강원·충청·전라 등지에 지단을 설치하던 임시정부 지원 단체였다. 애국단의 목적은 임시정부의 선전과 재정 조달, 국내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상경 후 단원인 서울 원동(苑洞) 김순호(金順皓)의 집에서 애국단의 취지를 들었고, 같은 달 낙원동(樂園洞) 이기하(李起河)의 집에서 유희영(柳熙永)으로부터 애국단에 가입할 것을 권유받고 가입한 뒤, 외교원(外交員)으로 활약하였다. 외교원은 지방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으는 일과 동지를 포섭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애국단 가입 후 김영식의 계획으로 박인식(朴仁植)과 함께 다시 고창으로 돌아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는 한편, 『혁신공보』·『독립신문』·『대동신문』 등을 받아 지역에 전달하였다. 또한, 박인식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 1,000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창의 부호 강대직(姜大直)을 상대로 대한독립애국단원임을 밝히고 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이외에도 고창의 김대형(金大衡)을 단원으로 가입시키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월 애국단이 발각되자,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애국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 상하이 임시정부와 호응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권인채(權仁采)·안창호(安昌浩)·박건병(朴健秉)·엄세섭(嚴世燮)·박화진(朴華鎭)·이강(李剛)·이시우(李時雨) 등과 협의한 뒤 각 도에 애국단 지부를 설치하려 노력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등 안녕질서를 방해하였다는 혐의로 이른바 정치범죄처벌령 위반, 뇌물,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공갈 취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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