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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八

永八

1883. 3. 16 ~ 193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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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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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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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3년 3월 1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계곡동(桂谷洞, 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호는 성기(聖基)이다.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월에 열린 고종 장례식에 참석했던 유동시(柳東蓍)가 돌아와 준비하였다. 유동시는 임동면 수곡동(水谷洞)에 있는 협동학교(協東學校)의 유동태(柳東泰)와 이균호(李均鎬), 그리고 유연성(柳淵成)과 만세시위 준비를 협의하였다. 협동학교에서는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다. 유연성은 3월 15일 임동면 편항장터 공동 타작장에서 유동수(柳東洙), 이강욱(李康旭)과 만나 3월 21일 편항시장 장날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약속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오후 1시, 편항장터에서 기독교인 10여 명이 외치는 독립만세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후 2시, 유연성 등 주도자들이 시장에 나타나 독립선언식을 마친 후 시위대는 행진에 나섰다. 이때 시위대를 따라 행진에 동참하였다. 시위대를 제지하던 우치다(內田) 순사가 기세에 눌려 주재소에 숨어버리자 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무기를 빼앗고 서류들을 없앴다. 시위대는 우치다 순사와 권택석(權泰奭)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오후 5시,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안동경찰서에서 급파한 순사부장 1명, 수비대 군인 8명이 도착하여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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