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술
金聖述1897. 12. 21 ~ 1965. 3.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을교(일명 흠치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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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8) 1897년 12월 2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오보면(烏保面) 대부동(太夫洞, 현 영덕군 영덕읍 대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태을교(일명 흠치교)에 입교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태을교는 강일순(姜一淳)이 창도한 증산교(甑山敎)의 일파로, 차경석(車京錫)이 교단을 장악한 후 조직을 60방주(方主)로 개편하여 60방위 6인조, 그 하위로 12인조, 8인조, 15인조 순으로 교도의 계급을 두었다. 이 종교의 주문이 ‘태을주(太乙呪)’이고 그 시작을 ‘흠치 흠치’로 하는 데에서 태을교, 일명 흠치교라고 한다. 1920년 (음)8월 이명달(李明達)·이종구(李鍾九)·이진우(李鎭祐)·권영도(權寧燾)·이우석(李雨錫)·유경찬(柳景燦)·남재정(南在晶) 등과 함께 태을교 신자가 되어 8인조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부동 뒷산에서 제사를 지내고 ‘일심동체(一心同體)’를 서약하였다. ‘1924년 갑자년에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에 올라 일제의 통치로부터 벗어나 한국이 독립할 것’이라는 예언과 ‘그 교도가 국민이 되고 그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을 수 있다’라는 취지의 가르침에 뜻을 함께하고 선전하였다. 치성비 10원을 내놓고, 위의 계획 하에 영덕군 오보면 창포동(菖浦洞, 현 영덕읍 창포리)의 손장호(孫長浩) 등 여러 명에게 입교를 권유하여 부하 15인조에 가입시켰다. 이처럼 통일된 교도의 힘을 이용하려고 하위 조원을 모으는 한편, 국내외 다른 독립결사단과 호응하여 독립운동을 관철시키려는 계획으로 독립자금을 징수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5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922년 2월 27일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대구감옥에서 갇혔다가 1922년 3월 21일 부산감옥 마산분감(馬山分監)으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7월 20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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