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律
永律1884. 9. 29 ~ 1937. 11.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보합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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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4년 9월 29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동부면(東部面)에서 태어났다.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18년 9월부터 안둥현(安東縣)에서 숙박 업소인 의성(義城)여관을 운영하였다. 독립무장단체 보합단(普合團) 간부 김동식(金東植)과 친척간이다. 1920년 9월 김내홍(金迺洪)·김내범(金迺範)·이규화(李圭華)·이윤성(李允成) 등과 함께 보합단에 가입하였다. 보합단은 1920년 평북 의주에서 조직된 무장단체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출신 김동식(金東植)이 주도하였다. 김동식은 1920년 3월 백운기(白雲起)·안효준(安孝俊) 등과 상의한 후 대조선청년결사대(大朝鮮靑年決死隊)를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이어 그 해 5월 보합단으로 개칭하고 조직을 확대하였다. 조직원은 주로 의주 등지에 연고를 둔 사람들이 많았으며 주요 인물들의 일가 형제 또는 친인척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보합단원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의주 용천(龍川)·설산(鐵山)·선천(宣川) 등지에서 화승총과 권총 등 무기를 휴대하고 일제의 관공서 습격 파괴, 친일파 밀정 숙청, 군자금을 모집하고 해외 독립운동 기관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활동하였다. 이러한 보합단의 과감한 활동으로 일본군의 반격도 극렬하였다. 일본군은 1920년 8~9월 간에 걸쳐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 수색 작전으로 보합단을 압박하였다. 그 와중에 선천군 내산사(內山寺) 주둔지에서 일본군 수백 명과 전투를 벌이다 보합단원 여러 명이 중상을 입거나 포로가 되는 희생을 겪기도 하였다. 그 해 10월에는 압록강을 건너 본부를 남만주로 이전하였는데 도중 안둥현 부근에서는 중·일 양국 군경 부대의 공격을 받아 10여 시간 치열한 격전이 벌어져 쌍방 다수 사상자가 나왔다. 또한 압록강 하류 접리수(接梨樹) 부근에서도 적 경찰대와의 접전이 있었다. 이 무렵 보합단 간부 김도원(金道源)·이광세(李光世) 등은 서울에서 무장 활동을 계획하고 있던 이종형(李鍾滎)·조상백(曹相伯) 등과 함께 친일파를 처단하고 은행 습격 및 부호를 통하여 대대적인 군자금 모집 계획을 세웠다. 계획 추진 중 1920년 12월 경성부 운니동에서 종로경찰서 순사를 사격·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보합단원 중 상당수가 평안북도에서 일제히 검거되고 말았다. 안둥현에서 운영하던 의성여관은 보합단원이 회합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비밀 아지트로 활용되었다. 보합단에 가입하여 활동한 사실과 의성여관을 제공한 일이 일본 경찰에 포착되어 1921년 7월경 붙잡혔다. 7개월간의 재판과정을 거쳐 1922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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