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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祥

永祥

1920. 2. 15 ~ 197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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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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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永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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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평양사단 학병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920년 2월 15일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영천면(永川邑) 과전동(果田洞, 현 영천시 과전동)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제에 의해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독립군 참여를 위해 탈출 계획을 세우다가 붙잡혔다.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과(法科)에 입학하여 1학년에 재학 중 일제의 전세(戰勢)가 악화되어 수업이 정지되자 귀국하였다. 1943년 1월 평안남도에 있는 일본군 평양사단(平壤師團)에 징집되어 47포병부대에 배속되었다. 평양사단은 1943년에 창설되었으며 평양시내에서 약 8㎞가량 떨어진 추을(秋乙) 벌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사단은 42보병부대·43보병부대(함흥 주둔)·44보병부대·47포병부대·50치중병부대·1948공병부대 등으로 편성되었다. 한인 학병들은 아침 6시부터 심야까지 고된 훈련을 받는 한편 일본인 고참병들로부터 복장, 내무반 생활 등에 대해 트집을 잡혀 모욕을 당하거나 폭행, 단체 기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42부대의 학병 김완룡(金完龍)·박성화(朴性和)·전상엽(全相燁) 등은 의거(義擧)를 모의하고 1944년 8월 초순경부터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들은 행동 강령으로 “생명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것, 일체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단결할 것, 조직 명령에 복종할 것, 지성과 관용으로 동지애를 굳힐 것”을 정하고, 42부대 바로 옆의 47포병부대를 비롯한 다른 부대의 학병들을 규합하고자 하였다. 이때 47포병부대에 징집되었던 이철영(李哲永)·김세균(金世均)·김근배(金根培)·이준오(李濬五)·안진현(安鎭鉉)·노영준(盧永濬)과 함께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먼저 평양사단을 폭파하고자 하였으나 일본군의 반격과 폭약·탄약 문제 등을 고려하였을 때 쉬운 일이 아님을 인지하고, 부대를 탈출하여 만주지역 독립군에 합류하여 항일무장투쟁을 펼치기로 하였다. 의거일은 1944년 10월 1일로 정하였다. 그러나 47포병부대의 학병 노영준이 한인 보조 헌병에게 참여를 독려했다가 그의 고발로 전모가 드러나게 되어 주도자 박성화·김완룡·전상엽·최홍희·최정수·김태선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45년 6월 조선군관구(朝鮮軍官區) 임시군법회의(臨時軍法會議) 평양사관구법원(平壤師管區法院)에서 징역 4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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