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수
姜閔洙188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제주 법정사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2년경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창주면(滄州面, 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서 태어났다. 가정 배경과 유년 시절 성장 및 수학 과정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파악되지 않는다. 입적 시기는 확인되지 않으나, 영일군에서 승려로 활동하였다. 1914년경 김연일(金蓮日)·김인수(金仁秀)·정구룡(鄭九龍) 등과 제주도 좌면(左面) 도순리(道順里, 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있는 법정사(法井寺)로 갔다. 그 목적은 제주도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1918년 (음)3월경 김연일과 함께 제주도민이자 법정사 신도로 활동하던 방동화(房東華)·강창규(姜昌奎)·김용충(金用忠)·장임호(張林虎) 등에게 한국 독립 달성의 일환으로 제주도 내 일본인 관리와 경찰을 축출하자는 뜻을 전달하고 동의를 받아내었다. 9월 14일 법정사를 찾아온 김봉화(金奉和)·양남구(梁南求)·최태유(崔泰裕)·강봉환(姜奉煥) 등에게 일본과 투쟁할 의군(義軍)에 참여할 것을 독촉하였다. 이들의 참여를 확인한 김연일은 제주도민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고 참여를 이끌어낼 목적으로 격문을 작성하였다. 격문 작성에 참여하였다. 9월 19일 김연일이 “왜노(倭奴)는 우리 조선을 병탄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합 후에는 일본 관리는 물론 상인 등까지도 우리 동포를 학대하였다. 가까운 시일 안에 불무황제(佛務皇帝)가 출현하여 국권 회복을 할 것이니 이에 앞서 제주도에 거주하는 일본인 관리를 죽이고 상인을 섬 밖으로 쫓아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이에 호응하고 일본 경찰과의 무력 충돌을 결행할 마음을 다졌다. 10월 5일 일본 관리와 경찰을 축출하기에 앞서 군대 체계와 유사한 형태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김연일은 스스로 불무황제가 되고, 장임호를 모사(謀師), 강창규를 선봉대장, 김삼만(金三萬)을 후군대장, 양남구를 중군대장으로 임명하였다. 당시 좌우대장으로서 제주도민과 함께 항일 투쟁을 이끌었다. 이들은 법정사를 내려오기에 앞서 화승총, 곤봉 등으로 무장하였다. 주도자들은 제주도 각 면의 이장(里長)에게 격문을 배포하고, 제주도민에게 항일 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다수의 제주도민은 여기에 호응하였으며, 항일 전선에 가담한 인사는 400여 명이 넘었다. 이들과 함께 일본 경찰들의 연락을 끊을 목적으로 전선을 절단하고, 강정리·도순리·하원리·중문 등지로 진격하여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관리를 축출하고 경찰 3명을 포박하였으며, 주재소에 구금된 한국인 13명을 석방하는 등의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지속하여 전투를 벌이기에는 무장력에서 일본 경찰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항일 투쟁에 참여한 제주도민들은 일본 경찰에 진압되었다. 11월 6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되었고, 11월 11일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이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지만 대구복심법원으로부터 기각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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