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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金榮淳

1887. 7. 1 ~ 1971.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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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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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牙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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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87년 7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선장면(仙掌面) 신동리(新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선장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溫陽公立普通學校, 현 온양초등학교) 학생들의 시위에서 시작된 아산군의 만세운동은 4월 4일 선장면으로 이어졌다. 선장면의 만세운동은 정수길(丁壽吉), (奎熙)·서몽조(徐夢祚)·임천근(林千根)·오상근(吳相根) 등의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먼저 선장면 군덕리 선장시장에서 군중들에게 만세운동을 권유하였다. 이때 김천봉(金千鳳)을 비롯한 약 200여명의 군중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3시경 시위대와 함께 선장헌병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김천봉이 선두에 서서 사기를 돋우고 정수길 등이 곤봉을 휘두르며 지휘하자 시위에 참여했던 군중들과 주재소로 쇄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침입하여 창문·유리 등을 파괴하였다. 이에 주재소 헌병들과 온양에서 출동한 보병들이 총기를 발포하며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현장에서 1명이 사망하고 7명은 부상당했으며, 6명이 붙잡혔다. 이러한 무력 진압으로 인해 결국 시위대는 흩어졌고, 만세시위 이후 4월 20일 선장헌병주재소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20일 헌병대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4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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