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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植

永植

1904. 6. 2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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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永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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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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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동래군 동래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4년 6월 20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웅촌면(熊村面,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代垈里)에서 태어났다. 동래군(東萊郡, 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梵魚寺)에서 초등학교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던 명정학교(明正學校, 현 청룡초등학교와 금정중학교로 계승)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7일 경상남도 동래군에 위치한 범어사의 승려 김영규(金永奎)와 차상명(車相明) 등은 절에서 운영하는 지방학림(地方學林, 현 범어사 승가대학으로 계승)과 명정학교 졸업생 송별회에서 학생 30~40명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3월 18일 새벽 동래시장 인근 불교포교당에 집결해 대기하고 있다가 거사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포교당에 집결했을 때 사전에 시위 정보를 탐지한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김영규 등이 체포되었다. 포교당에서의 시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동래시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은 계획대로 시위를 일으켰다. 3월 18일 밤 동래읍성으로 나가 만세를 외친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은 이튿날인 19일에도 재차 시위를 벌였는데, 명정학교 학생으로 이날 시위에 참여해 만세를 외쳤다. 3월 19일 오후 5시경 읍성 내 동래시장 남문 부근에서 친구들과 독립만세를 외친 후 연이어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경찰서까지 행진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고, 1919년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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