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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갑

金斗甲

1922. 10. 16 ~ 194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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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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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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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고베 조선인민족주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922년 10월 16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현 김해시) 진례면(進禮面) 신안리(新安里)에서 태어났다. 1942년 2월경부터 신동하(辛東夏) 등과 함께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인 고베(神戶)에서 독립운동 단체를 구성하려 하였고, 3월 말경에 민족주의 단체를 조직하였다. 1941년경 고베가 위치한 효고현(兵庫縣)에는 12만 3,931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독립운동 단체의 결사에 필요한 인원은 충분한 상황이었다. 특히 고베에서는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전철 부설공사를 시행하는 와중에 한국인 노동자가 다수 동원되었고, 그중에서 13명이 희생되어 한국인 사이에 민족적 갈등 요소가 팽배해 있었다. 1942년 초에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뒤 싱가포르와 버마까지 진군하는 승전 상황을 보고서도 장래에 일본이 미국 등과의 전쟁에서 패전할 것이며, 이런 시기에 한국 민중이 봉기하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당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일시 귀국증명서가 없으면 한국과 일본의 왕래가 불가능한 점, 한국의 문화와 정신이 말살되고 있는 점, 일제의 한국 통치는 착취와 압박이 그 실체인 점, 지원병과 징병제도는 한국인들을 이용하는 데 불과하다는 점 등의 시대적 문제점과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 등의 투사가 투쟁하고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들어 민족의식을 함양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청년 동지를 민족주의 단체로 끌어들이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1943년 3월 31일에 고베 조선인민족주의사건(朝鮮人民族主義事件)으로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43년 10월 4일 고베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옥중에서 당한 가혹행위로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1944년 3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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