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
金萬濟1912. 10. 6 ~ 1991. 10.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용상청년회(龍上靑年會)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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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912년 10월 6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현 공주시) 계룡면(鷄龍面) 경천리(敬天里)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석 성명강요로 개명된 상촌만제(桑村萬齊)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28년 1월 1일, 공주군 계룡면과 논산군 상월면에 거주하는 뜻있는 청년들이 모여 용상청년회(龍上靑年會) 발기를 결의하고, 1월 8일에는 청년 수십 명이 모여 발기총회를 개최하고 창립총회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용상청년회의 창립 규약 초안 및 의안 작성 위원 3인과 선전위원 14명을 선출했는데, 선전위원이 되었다. 1928년 2월 6일, 용상청년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현실적 이익과 상호부조 도모, 청년 대중을 위한 교양과 훈련 실시, 무산 대중의 문화 향상과 계급의식 각성을 강령으로 발표하고, 활동 사항을 의결하였다. 집행위원장을 비롯해서 서무부, 교양부, 조사부, 사교부, 경리부, 체육부, 선전부 등에 대한 위원 선출도 진행됐는데, 교양부 위원이 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고베중앙신학교(神戸中央神學校)에 입학하였다. 일본이 전쟁으로 인해 군사적·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이 일제히 봉기하면 독립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에 나섰다. 1940년 봄부터 같은 학교 유학생 김영창(金永昌)·강창호(姜昌浩)·안용준(安瑢濬)·김희영(金希榮)과 함께 여러 차례 모여 독립 운동 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이들과 함께 한인 학생 친목회나 기독교 전도 행사 등을 이용해 교내와 여러 장소에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으키는 활동을 했다. 한인 학우들에게 일제가 한글과 우리 민족의 말살을 목적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반일 정신과 독립 의지가 격렬히 일어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이광수의 창씨개명을 매국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하기도 했다. 또한 국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의 활동 내용을 공유하고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찬양하였다. 1940년 10월 6일에는 오사카(大阪) 다나베(田邊)교회 등에서 기독교 신자를 대상으로 ‘눈을 뜨고 산을 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여 민족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조국을 떠나 노예 생활을 하게 된 유대인의 상황을 일제강점기의 한국인에 비유하는 내용이었다. 1941년 12월 8일에는 김영창의 장녀 출생을 축하하는 친목회를 기회로 삼아 학우들과 만났다.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 시작되었으므로 독립을 실현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말하고 참석자들과 실행 방법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41년 12월 9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 경찰의 취조를 받던 중 1942년 4월 2일에 병으로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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