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윤
金奉允1884. 2. 13 ~ 1986. 7.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4년 2월 1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서정리(西亭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복윤(金福允)을 사용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고향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가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청양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청양군에서는 4월 5일에 청양읍·정산면·화성면(化城面)에서 대대적인 만세 시위가 있었다. 그중 정산면에서는 백곡리에 거주하는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種)·권흥규(權興圭) 등이 태극기를 준비해 장터에 모인 장꾼 1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청양헌병분견소 정산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이들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군중은 오히려 늘어 700여 명이 헌병주재소 앞에서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헌병들은 처음에는 공포탄을 쏘며 군중을 위협했지만 시위가 진정되지 않자 실탄을 발사하였다. 이때 정산향교 직원 권흥규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다음 날 6일 시장 사람들이 헌병대로부터 시신을 넘겨받아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 고인의 댁으로 향하는데, 운구 행렬이 점차 늘어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이때 또다시 일본 헌병이 운구 행렬에 발포하여 고인의 조카딸과 상여꾼 등 6인이 사망하였다. 그 후 일제는 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가 시작되었다. 마을 단위로 진행된 체포를 통해 정산면 주민 150명이 체포되어 태형을 받았다.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일로 체포되어 4월 22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승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