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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룡

金三龍

1898. 6.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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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삼룡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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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公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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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98년 6월 12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운궁리(雲弓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 고향에 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정안면에서는 석송리(石松里)에 거주하는 유림 이기한(李綺漢)의 주도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평소 한국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던 이기한은 3·1운동의 소식을 듣고 4월 1일 마을 사람들에게 만세 시위를 벌이자고 설득하였다. 석송리에서 시작한 수백 명의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광정리(廣亭里)를 향해 행진하였다. 이때 운궁리 사람 20명과 함께 내촌리(內村里)에서 모범림 식수 부역을 하고 있었다. 석송리 방면에서 오는 시위대가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설득하자, 지게와 쇠스랑을 가지고 대열에 합류하였다. 시위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 소재지인 광정리에 도착했을 때 시위대는 800명에 이르렀다. 이기한은 사람들에게 광정경찰주재소를 파괴하자고 외쳤다. 이에 김오룡(金五龍)·윤원식(尹元植)·홍점산(洪點山)·황타관(黃他官)·이돈석(李敦錫) 등과 함께 주재소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 식수작업을 할 때 사용한 지게받이와 쇠스랑 등을 들고 주재소 좌측 담장을 부수었다. 이에 다른 사람들도 힘을 얻어 주재소의 창문과 출입문을 부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위대 일행이 돌아오는 길에 석송리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공주경찰서에서 급히 파견된 순사 이하 5명이 탄 자동차가 이곳을 지나가려 하였다. 시위대는 일제 경찰이 탄 자동차를 가로막으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일제 경찰은 시위 주모자를 체포하려 나섰고, 이를 저지하려는 시위대와의 사이에서 몸싸움이 일어나자 발포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체포되었다. 체포되지 않은 수백 명의 사람이 다시 광정경찰주재소로 몰려가 항의하였다. 이들은 밤늦게까지 봉화를 밝히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만세 운동은 4월 3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일제에 붙잡혀 1919년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동년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고 징역 10개월(미결구류일수 중 100일 본형 산입) 형을 다시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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