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金相根187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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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875년경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 개장리(開墻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단천군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3일 천도교 중앙본부로부터 단천교구장 염원형(廉元亨) 등에게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시작되었다. 함남의 어느 지역보다 천도교의 교세가 강했던 단천 지역의 만세 시위는 천도교인들이 주도하였다. 염원형은 설운용(薛雲龍) 등 단천 지역 천도교 중심인물들과 논의를 통하여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순도기념일(殉道紀念日)인 3월 10일 파도면(波道面) 대성리(大成里)에 있는 천도교 단천교구당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0일 오전 11시경 단천군 전 지역에서 300여 명의 천도교인이 천도교 단천교구당에 모였다. 먼저 순도기념식을 거행한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이때 염원형·설운용·김병무(金柄茂)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파도면 용현리(龍峴里)와 하서리(下西里)를 지나서 단천헌병분대로 향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가 헌병의 저지선을 뚫으려 할 때, 선두에 있던 서봉화(徐鳳化)가 헌병분대장의 칼에 찔려 숨졌다. 또한 시위대를 향한 헌병들의 발포가 이어졌고, 염석하(廉錫河)·염석한(廉錫漢)·김상갑(金尙甲) 등 7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그리고 염원형·김병무·김성식(金成植) 등 142명과 함께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되었다. 이 일로 그는 1919년 5월 23일 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8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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