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봉일

金鳳一

1859 ~ 192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강원 평창(平昌)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평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1859년경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봉평면(蓬坪面) 평촌리(坪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봉상(金鳳上)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大和面) 신리(新里) 사동(寺洞)에서 서당 훈당으로 지내면서 1920년 (음)11월 무렵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려는 뜻을 품고 있던 강원도 정선 출신의 김정국(金正國)과 만나 의기투합하고 고종 독살설을 알리는 ‘격고팔역인민문(檄告八域人民文)’을 전해주어 동지들에게 교부하도록 하였다. 1921년 11월 말경 아들 김도원(金道源)과 김정국이 한국 각 도 경찰부장 및 민간 유지들에게 통고문과 선전문을 발송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찬성하여 태평양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므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본국으로 귀국시켜라는 내용으로 각 도 경찰부장에 보내는 통고문을 입안하였다. 또한 ‘격고팔역인민문’을 수정·보완하여 곧 한국이 독립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민간 유지들에게 보내는 선전문을 작성하였다. 자금을 모아 괘지·봉투·우표 등을 구입한 후 통고문과 선전문을 필사하였다. 그리고 12월 10일과 12일 김정국과 김도원을 시켜 강릉군과 평창군 대화면 일대에 배포하게 하였다. 같은 달 16일 민간 유지들에게 추가로 발송할 선전문 9통을 다시 작성하고 세 사람이 각각 세 통씩 나누어 거주하는 마을 인근에 배포하였다. 1922년 2월 4일 이 일로 체포되어 3월 11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6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4년 칙령(勅令) 제10호에 의해 사면령이 내려졌을 때 이미 사망하여 복권될 수 없다는 기록으로 보아, 1924년 1월 26일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