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희
姜榮羲1881. 2. 2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단 충청도지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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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881년 2월 29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강경면(江景面) 북정(北町)에서 태어났다. 박성빈(朴聖彬)이 간도에서 군자금 모집과 일본인 고위관리의 암살 처단 등을 목적으로 광복단(光復團)을 결성하자, 1919년 단원으로 가입한 김국경(金國景)은 전라·경상·충청 지역 책임자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이 될 청년 장병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로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1920년 귀국 후 광복단으로부터 일본인 고위관리를 암살 처단하라는 지시를 받은 김국경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정무총감(政務總監)이 동년 10월 9일 충남 공주 지방을 순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지를 규합하여 정무총감을 암살하고자 계획하였다. 이에 따라 공주로 간 김국경은 공주에서 동지 박재영(朴在榮, 일명 朴在玉)과 회합하고 강영희를 광복단 충남지단장(忠南支團長)으로 임명하여 정무총감 처단 계획에 동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무총감이 공주를 거쳐 논산으로 출발함에 따라 거사에 실패한 박재영이 충남 논산으로 향하였다. 이에 박재영은 논산 일대에서 이주호(李周鎬)·윤상긍(尹相肯)·이승조(李承兆)·강태인(姜泰仁)을 단원으로 모집할 때, 충청도 지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10월 윤상긍·강태인 등 논산 출신 단원과 함께 군자금 모금을 위해 “우리 조선 민족은 적의 노예와 같은 자에 종속함은 참기 어려운 치욕으로, 이를 면하자면 조국의 독립을 기도함이 최선의 급선무다. 그러나 독립이 되자면 우선 자금이 충실하여야 할 터이니 유지에 대하여 모집하는 바이다”라는 내용의 통고문을 논산군 일대 부호들에게 발송하였다. 통고문 발송 후 논산군 성동면 거주 부호 조동시(趙東始)에게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할 군자금 560원을 모집하였다. 이외 군자금 1,000원을 추가 모집하기 위해 단원 정인행(鄭寅行)·이주호(李周鎬) 등과 함께 논의하였다. 그러나 조동시의 밀고로 1920년 11월 정인행이 서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파견원과 연계해 군자금 모금 방안을 모색하던 중 체포된 것을 계기로 광복단 충청도지단도 해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그는 1921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공갈, ‘대정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살인예비 등의 혐의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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