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
金明三186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69년경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벽동면(碧潼面) 하서동(下西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도로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1일 벽동면에서 전개된 천도교인들의 만세 시위 운동을 이끌었다. 3·1운동 직후부터 『매일신보』 등을 통해 파리강화회의와 민족자결주의의 내용을 접해 알고 있었다. 3월 31일 오전 7시 천도교인 200명과 함께 벽동읍내 남문안에서 만세 운동을 시작하였다. 벽동군수가 해산을 종용해 잠시 흩어졌던 군중은 다시 집결하여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에 출동한 헌병과 보병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3명이 부상을 입고, 10명이 검거되었다. 읍내 장날인 4월 1일까지 지속된 만세 시위에서 8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틀 연속된 시위로 일본군 보병 26명이 투입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3~25명이 검거되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7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며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을 부여한다는 내용을 매일신보에서 보도했다는 것을 들었다. 병합 이래 4,000여 년의 역사가 멸망한 지경에 민족으로서 애국심을 분발해야 할 일이므로 동지 수백인과 회합하여 만세 부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한 후에는 벽동천도교구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