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유
金文裕1894. 6. 1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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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3) 1894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漣川郡) 백학면(百鶴面) 두일리(斗日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였고, 날품팔이(日稼業)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명으로 김학원(金學元)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21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의 두일리시장(斗日里市場)과 미산면(嵋山面) 마전리(麻田里)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오후 5~6시경 두일리시장에서 미산면 석장리(石墻里)에 사는 조우식(趙愚植)의 주도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때 시장에 나온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고, 백학면장 윤규영(尹圭榮)을 끌고 와서 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어 오후 6시 30분경 구금룡(具今龍)이 소방용 경종을 울리자, 조우식·정현수(鄭賢秀) 등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백학면사무소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독립 만세를 부르라고 요구하였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과 건물 일부를 파손하였다. 이에 마전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주민들의 만세 시위를 제지하였다. 그러나 만세 시위에 참여한 주민 200여 명과 함께 헌병들의 저지를 뚫고, 오후 7시 30분경 미산면 마전리로 이동하여 향교 및 학교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때 두일리시장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들은 백학면 통강리(通江里)의 백천기(白天基)가 주민 60여 명을 이끌고 마전리로 와서 합류하였다. 기세가 오른 시위 군중과 마전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낙주(李洛周)·홍순겸(洪淳謙)·김복동(金復東)·한상혁(韓相赫) 등과 함께 다음 날인 3월 22일 새벽까지 독립 만세를 절규하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를 제기하여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다시 “자기의 행위는 정의·인도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이므로 범죄가 아니다”라며 상고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6월 17일 만기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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