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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하

金炳河

1885. 12. 27 ~ 196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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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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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강(平康)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평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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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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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3) 1885년 12월 27일 강원도 평강군(平康郡) 서면(西面) 정산리(定山里)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천도교이다. 강원도 이천군(伊川郡)의 만세 시위는 1919년 4월 4일 낙양면(樂壤面) 지석리(支石里)에 있는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지석리 시장은 강원도와 황해도의 접경 지역으로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었다. 천도교인으로서 김응제(金應濟), 김이순(金利淳), 이여종(李呂鍾), 이두영(李斗榮), 김혁근(金赫根) 등의 천도교인과 함께 지석리 시장에서의 만세 시위를 결의하고, 김응제의 집에서 태극기와 격문 등을 제작하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4일 오후 3시경 만세 시위가 개시되자 약 500여명의 시위 군중이 호응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내락리(內洛里)와 지하리(支下里) 주민들이었다. 김응제와 함께 지락리 주민을 동원하는데 앞장섰으며, 밤 10시쯤에도 지석리 시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인 4월 5일 오전 2시경 지상리(支上里)에 사는 김명기(金命基)가 만세 부르기를 거부하자, 가지고 있던 곤봉으로 김명기의 얼굴을 구타하였다. 오전 3시경에는 김응제 및 이여종 등과 함께 주민들을 깨워 지석리 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오전 5시경 시장에 도착한 후 주민들과 독립 만세를 외치고, 60여 명의 시위군중들과 함께 곤봉을 들고 지하리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만세를 불렀다. 시위군중은 헌병 3명과 육탄전을 벌였는데, 결국 헌병이 쏜 총에 맞아 5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후 4월 4일과 5일 지석리 시장의 시위에 자극받아, 이천면 장날인 4월 6일에는 또다시 천도교인에 의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10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1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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