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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수

金芳洙

1916. 6. 7 ~ 197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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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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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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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1916년 6월 7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창면(高敞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창씨명은 금광성항(金光成恒)이다. 1930년 3월 무장공립보통학교(茂長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한때 과일 장사와 군(郡) 농회(農會) 지도원 등으로 일하였다. 1942년 3월경 연극배우가 되고자 서울로 올라와 동양극(東洋劇) 연구부원이 되었다. 하지만 생계 곤란으로 그해 9월 중순 고창으로 돌아와 대일본방적주식회사(大日本紡績株式會社)의 인사외교원(人事外交員)으로 근무하였다. 고창군 아산면(雅山面) 상갑리(上甲里)의 강수원(姜壽元, 창씨명 : 신강수원(神江壽元))과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에 눈뜨게 되었다. 강수원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0년 12월 김창옥(金昌沃)·박석우(朴錫祐)·홍영기(洪英基) 등과 함께 비밀결사 아등(我等, 우리들)을 조직하고 민족문제를 연구하였으며, 1941년 4월경부터 국내와도 연락하며 비밀결사 운동을 도모하였다. 1941년 4월경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의 한 암자에서 강수원과 만났는데, 그가 ‘조선민족’의 우수성과 과거 독립국가로 융성했던 시대도 있었다고 언급하며 한국의 독립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강수원이 학우들과 조직을 결성해 한국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동지 규합에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서로 제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1942년 6월경 서울에서 강수원과 만나 당면한 태평양전쟁이 장기화하여 일제는 패전하고 한국은 독립할 것이니 이때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당시 강수원에게 자신은 연극 공부를 하니 배우로서 한국 역사극을 연출하여 한국인 대중의 민족의식을 앙양하는 데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연극 공부를 접고 다시 고창으로 내려온 1942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여러 차례 선석선진(仙石善鎭)을 만나, 강수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로 규합하였다. 같은 해 11월 읍내리 목원용성(木原勇盛)의 집에서 선석선진·신광용환(新光容煥)·오근택(吳近澤)과 함께 만나, 미국의 경제력이 일본보다 우월하니 일제의 패망은 틀림없고 이때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때이므로 한국 독립을 위해 매진하자고 주장하였다. 1943년 6월 하순경에는 자촌의정(杍村義正)에게 본인이 배우가 되어 한국 민족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할 것이며 한국 독립운동에 매진할 각오임을 밝히며 동지로 규합하였다. 같은 해 8월 하순경에는 신광용환에게 김일성(金日成)이란 신출귀몰(神出鬼沒)한 한국인이 백두산에서 무기를 가지고 항일 투쟁하며 한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을 전하였다. 같은 해 10월 중순경에도 자촌의정 등에게 우리 한국인은 일본인의 경제적 압박 때문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우리 청년들이 한국 민족의 행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며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강수원의 지도하에 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던 중 1943년 10월경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 9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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