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金明埴187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석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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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1878년경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용화면(龍化面) 조동리(鳥洞里)에서 태어났다. 1909년 8월 충북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영국사(寧國寺)에서 거병한 조석우(趙錫祐) 의병부대에 병졸로 가담하였다. 당시는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해산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고 평민 출신 의병장들이 나서면서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들의 무장투쟁이 한층 고양되었다가 일제 군경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인하여 1909년 봄 이후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동군에서 조석우 등이 중심이 되어 일본인을 몰아내고 자주독립국가를 만들려는 무장투쟁단을 조직하였다. 조석우는 전라북도 운봉 출신으로 12명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스스로 총대장으로 칭하고 일본인과 일본인에게 부역한 한국인을 처단하고자 하였다. 이때 장군선(張君先)·조덕장(趙德章)·권덕원(權德元) 등은 부장이 되었고 이기덕(李起德)·허항(許恒) 등 7명과 함께 병졸이 되어 참여하였다. 1909년 8월 23일 충북 영동군 양내면에 있는 영국사(寧國寺)에서 모여, 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인 모두를 살해하고 철도 정거장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한 뒤, 여러 곳에 격문을 보내고 장정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다음 날 곤봉을 휴대하고 영국사가 위치한 면내 민가에 들어가 음식물을 징발하고 15세 이상 40세 이하의 남자는 모두 따를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처단하고 집을 방화하겠다고 하였다. 실제 장정 모집에 불응하고 피난한 손성대(孫成大)의 집을 불태운 뒤 마을 장정 19명을 징발하려 하였다. 이때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총대장 조석우를 비롯한 전원이 붙잡혔다. 이때 함께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2년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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