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金明起1920. 6. 15 ~ 2012. 9.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1)
관련 사건
- · 민족의식 고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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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1) 1920년 6월 15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영유면(永柔面) 원유리(元柳里)의 중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풍천명웅(豊川明雄)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했다. 영유공립보통학교(永柔公立普通學校) 졸업 후, 1935년 3월부터 1936년 3월까지 평원군의 명륜강습소(明倫講習所)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1937년 4월 만주의 신경공학원(新京工學院) 토목과 야간부에 입학하였다. 낮에는 만주국 전신전화주식회사 신경중앙전화국 기술과에 근무하며 학교에 다녔다. 1940년 12월 신경공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1년 4월 도쿄(東京) 소재 고쿄쿠샤고등공학교(攻玉社高等工學校) 토목과 야간부에 입학하였다. 주간에는 도쿄시 항만국 축항과에서 일하면서 학업을 병행하였다. 학교에 입학한 후,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전라북도 김제군 출신인 동급생 김좌목(金佐穆, 金林佐穆)과 자주 만나서 교류했는데, 주로 독립을 이루기 위한 방책이나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비판 등 독립에 관한 모의를 했다. 1942년 6월 자신의 하숙집에서 김좌목을 만났다. 김좌목은 한국인이 식민지 민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귀국하여 아동들에게 한국어를 보급하고 가정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며 민족의식을 심고, 경제적으로 실력을 양성해 역사의 전환기에 독립을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크게 공감하고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7월에도 하숙집에서 김좌목을 만나 한국인은 일본인과 결혼하지 말고 한국인으로서의 혈통을 지켜야 하고 장차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인을 지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호응해 목적을 실행할 방안에 관해 협의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42년 12월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3년 12월 4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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