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경
金世暻188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84년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경포면(景浦面) 좌동리(左東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저녁 보성사(普成社) 사장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강원도와 함경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은 안상덕(安商悳)이 3월 1일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홍원의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강인택은 홍원교구장인 강남섭(姜南燮)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강남섭으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뒤인 3월 7일 강남섭·강인택·김한욱(金漢郁) 등 홍원교구의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이 회합에서 주익면(州翼面, 이후 홍원읍)의 장날인 16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는 것과 독립선언서를 함남 일대에 배부하는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13일에는 학천면(鶴泉面) 풍산리(豐山里)에 있는 강연상(姜鍊翔)의 집에서 강남섭·강인택 등과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1,000장을 등사하는 한편, 한국 독립 깃발을 만드는 등 만세 시위 준비를 진행하였다. 또한 경포면의 천도교인들에게 만세 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6일 오전 11시 주익면 성동리(城東里) 장터에는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이 연설을 마치자, 깃발을 든 김기흥(金基興) 등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다.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된 700여 명의 시위대는 독립 만세를 부르며 홍원군청까지 행진하였다. 군청 앞에 도착한 시위대는 더욱 큰 소리로 독립 만세를 불렀고, 이에 일제 경찰은 시위 주도자들을 향해 붉은 잉크를 뿌리며 시위를 제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8명이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옷에 붉은 잉크가 묻은 주동 인물들과 참여자 등 6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함께 체포되어 1919년 4월 2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 판결 중 부분 취소되고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