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양수

金陽洙

1849. 11. 11 ~ 1930. 8. 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양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3.1운동

관련 단체

  • · 최익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1)

관련 사건

  • · 최익현 의병부대
  • ·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서 서명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1) 1849년 11월 11일 출생하였으나,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은 창의(倡義)를 계획하고 전라남도 태인(泰仁) 종석산(鍾石山)의 임병찬(林炳瓚)과 의병을 일으킬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어 정산(定山, 현 충청남도 청양(靑陽))을 출발하여 종석산에 도착한 후, 고석진을 정산, 정시해(鄭時海)를 영남으로 보내어 각지의 유림과 의병부대 구성을 모의하였다. 이어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講會)를 열고 격문을 작성·배포하였으며, 1906년 6월 4일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최익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고성열(高聖㤠)·고시덕(高時德)·고학진(高鶴鎭)·고제욱(高濟郁)·고화숙(高和叔)·고제영(高濟榮)·김청일(金淸一)·김평일(金平一)·이인숙(李仁淑)·황종관(黃鍾寬)·고하진(高河鎭)·최태근(崔太根)·강익문(姜益文)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선언과 만세 시위를 목격한 경상북도 성주의 유림 김창숙(金昌淑)은 성태영(成泰永)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독립을 호소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유림의 동원을 준비하는 한편 영남 지역 유림의 신망이 높던 곽종석(郭鍾錫)에게 독립청원서 작성을 의뢰하였다. 한편 호서의 유림도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계획하고 있었다. 같은 활동을 준비하던 영남과 호서 지역의 유림은 독립청원서를 통합하기로 뜻을 모으고 함께 서명하였다. 이때 유림 대표 137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이후 김창숙이 3월 28일 상하이로 출국하였다. 여기에서 이시영(李始榮)·신채호(申采浩) 등과 제출 방법을 논의하여, 파리에 주재하고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독립청원서를 우송하기로 결정하였다. 인쇄된 청원서 번역본은 국외 각 기관 언론에 보냈고, 원문을 국내 각지의 향교로 우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