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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칠

金良七

1882. 6. 2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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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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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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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82년 6월 24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직업은 용인(傭人)이다.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및 정미면(貞美面, 현 당진시 정미면)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2월 말경 고종의 국장을 참례하려고 지역의 남주원·남상돈(南相敦)·이두하(李斗夏) 등 유림이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3·1운동을 직접 목격한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소지하고 귀향해 서울의 만세 시위 상황을 전하였다. 3월 26일 대호지면사무소에서 면서기 김동운(金東雲)·강태훈(姜泰壎)·민재봉(閔載鳳)과 면소사 송재만 등이 회합을 갖고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합의하였다. 이어 다음 날인 3월 27일 오후 4시경 재차 모여 김동운이 ‘4월 4일 오전 8시경까지 도로 수선을 위해 면민 각호 1명씩 집합하라는 공문을 작성해 구장들에게 배포하고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자’라고 제안함에 따라 함께 실행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3일에는 송재만이 9개 마을의 구장에게 도로 수선을 위해 집합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하며 주민들에게 고지하도록 부탁하였다. 밤에는 도호의숙과 반곡서당의 훈장인 한운석(韓雲錫)을 면사무소로 모셔 ‘애국가(愛國歌)’를 작사하도록 의뢰하여 약 400매를 인쇄하고, 흰 광목으로 대형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민 400여 명이 대호지면사무소에 집합하였다. 면장 이인정은 “여러분이 여기에 모인 것은 도로 수선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조선 독립 운동을 일으키고자 함이다”라고 연설하고, 조선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날 참가하여 면민들과 호응해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어 면민들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천의시장을 향해 출발했고, 만세 행렬 도중에 송재만 등이 애국가를 배포하였다. 대호지에서 천의시장으로 가는 길목마다 독립만세를 외치고 대호지면사무소에 집합하지 못한 주민 등 인근 주민들이 합류해 시위대는 8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약 7킬로미터의 거리에 대략 3시간이 걸린 만세 행렬은 오전 11시경 천의시장에 도착하였다. 먼저 시장에 태극기를 세우고 남주원·이대하·한운석·남상락·남상직 등이 군중에게 독립 연설을 한 후, 시장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시장 북쪽 천의경찰관주재소에서 순사 우에하라(上原)·순사보 유기우(柳冀祐)·이재영(李在英) 등이 출동하여 해산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1,000여 명의 군중은 시장과 주변 언덕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고, 일부는 면사무소로 이동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시위 군중은 시장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위 운동의 급보를 접한 당진경찰서에서 니노미아(二宮)·다카시마(高島) 순사가 오후 4시경 도착해 태극기를 강제로 압수하려 시도하면서 충돌이 시작되었다. 군중은 저항하며 순사들에게 돌을 던졌다. 남태우(南泰祐)·김팔윤(金八允) 등이 니노미아·다카시마를 논 가운데로 떠밀었다. 우에하라도 군중을 저지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섰고, 파견 순사 2명이 발포하여 군중 4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과 함께 순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돌을 던지자 순사 3명은 주재소로 도주하였다. 군중과 순사들을 뒤쫓아 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고 각종 시설과 기물들을 파손하였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우에하라는 총기를 가지고 주재소를 빠져 나와 도주했고, 이를 본 남상직·이춘응(李春應)·고수식(高壽植)·권주상(權周相) 등과 함께 돌을 던지며 뒤쫓아 가서 붙잡아 구타하였다. 일제 경찰을 응징하고 주재소를 파괴한 군중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다음의 독립 만세 운동을 기약하고 일단 귀가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참가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에 나섰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공문서 위조 행사 등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1920년 2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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