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만
金成萬189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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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0년경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면(沙里院面) 사리원리(沙里院里)에서 태어났다. 단 다른 자료에 의하면 1891년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이명으로 김중섭(金重燮), 김윤호(金允鎬)가 있다. 1924년 7월 이른바 ‘사기죄’로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인쇄술에 능하고 조폐국에 근무한 경험으로, 1926년 백순화(白順和)와 함께 봉천 지폐 10여만 원을 위조하여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에 보냈고, 조선은행권도 5, 6만 원을 위조하여 역시 만주와 상해 등지의 군자금으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1927년 10월 초순 서울에서 동지 유범규(劉範圭)·백순화·현기봉(玄基鳳) 등과 만나 군자금을 모아 자금문제로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기로 결의하였다. 조선은행권을 위조하고 임시정부의 독립공채증서를 인쇄하기로 하고, 시험용 인쇄기계와 폭탄제조용 염산과 유황 등을 함께 매입하였다. 1927년 11월까지 수은동 한명선(韓明先)의 집에서 조선은행권 10원 권 300여 매를 위조 인쇄하였고, 이듬해 자산가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안국동에 있는 유범규의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공채증서 17매를 제작하였다. 한편 준비한 폭탄의 성능이 좋지 못하자, 현기봉을 평안남도 개천(价川)에 파견해 임시정부 요원 김련(金鍊)·김우천(金祐天)·장순봉(葬舜鳳)과 그 후원을 논의하였다. 5월 27일 유범규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안국동 집이 수색당하게 되었고,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9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사기, 통화위조, 강도예비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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