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金水東187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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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1874년에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양변면(兩邊面) 사슬치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여동(金呂東)이 있다. 집안 및 성장 과정, 직업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1908년 의병 운동에 참가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대한제국에서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 일본은 대한제국을 자국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시도를 본격화하였다. 1904년 8월 22일 제1차 한일협약, 1905년 11월 17일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였으며 통감부가 설치되었다.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 퇴위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연이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되었고,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하면서 일제에 대한 전국적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 1907년 당시 강원도 지역 의병 전쟁에 불을 붙인 것은 원주진위대의 해산과 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관동창의군의 출범이다. 이는 이후 13도창의군의 창설과 서울 진공 작전으로 이어진다. 비록 서울 진공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에 저항하는 대규모 무력 저항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원주(原州)·영월·평창(平昌)·횡성(橫城) 등은 강원도 지역에서 전개된 의병 전쟁에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지역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조류 속에서 1908년 홍관여(洪寬汝)·서병순(徐丙順)·김춘일(金春一)·곽양일(郭陽一)·정기옥(鄭琦玉) 등과 함께 강원도 영월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8월 7일 영월군 우변면(右邊面) 가오개리(加五介里)에서 잡화상 이준용(李俊用)에게 현금 240원과 179원 2전 상당의 물품 12점을 군자금 및 군수품으로 모집하였다. 이후 영월군 좌변면(左邊面) 거안리(巨安里)로 이동하였는데 이곳에서 1908년 8월 13일 의병부대를 추격해온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다. 교전 끝에 체포되었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8년 9월 30일 강도죄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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