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범
金時範1890. 9. 13 ~ 1948. 1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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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8) 1890년 9월 13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금해시범(金海時範)으로 고쳤다. 조천리의 유지 집안 출신으로, 1919년 당시 잡화상을 하였다. 최익현(崔益鉉)의 제자인 김희정(金羲正)에게 사숙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민족자결주의의 흐름이 고조되면서,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신문을 통해 서울과 여러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알고 만세 시위의 뜻을 품게 되었다. 당질이었던 휘문학교 학생 김장환(金章煥)이 3·1운동에 참여한 뒤 3월 15일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일족에게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전달하였다. 이에 백부이자 저명한 유학자인 김시우 역시 ‘결사진력’을 표하며 동의하였다. 일족이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하자 김시학(金時學)·김시은(金時殷)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적극적으로 준비하였다. 그리고 고재륜(高載崙)·백응선(白應善)·김연배(金年培)·황진식(黃鎭式)·김찬용(金燦容)·박두규(朴斗奎)·이문천(李文千)·윤계진(尹桂珍)·김경희(金慶熙)·김필달(金弼達) 등을 동지로 포섭하였으며, 김형배(金瑩培)에게 대량의 태극기를 제작하도록 지시하는 등 조천에서의 만세 시위를 주도적으로 준비하였다. 구체적인 거사 장소로는 조천리 인근의 미밋동산으로 설정하고, 서당 및 유림 인맥을 동원하여 인근 신촌리(新村里)·함덕리(咸德里) 등에 연락하였다. 그러던 중 김시우가 사망하자, 이를 기회로 조문하러 모여든 주민·서당 생도·유림 인사 등 500여 명을 인솔하여 거사를 단행하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오전 10시, 큰 태극기를 미밋동산에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김장환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니 모두가 따라서 만세를 삼창하였다. 이에 1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제주 읍내로 나아가려던 중, 신촌리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에 의해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살이하다가 1920년 4월 8일 가석방되었다. 출옥 후에는 사숙과 야학을 통해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조천소비조합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시위의 참여자들과 함께 미밋동산동지회(同味會)에 참여하는 등 민족운동 및 사회 활동에 전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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