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金奭東1922. 1. 17 ~ 1983. 3.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 · 한국광복군 제2지대
- ·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판공실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2년 1월 1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대동단(大同團) 총재로 활동한 김가진(金嘉鎭)의 손자이다. 진인위(陳仁偉)라는 이명이 있다. 1939년 2월 중국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청년공작대) 결성에 참여하여 항일 선무 활동을 벌였다. 1939년 2월 결성된 청년공작대는 한국국민당, 재건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3당 우익진영 과 청년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여기에 임시정부 가족 및 중국인들이 참여하여 약 70여 명에 이르는 대원을 확보하였다. 청년공작대 당시 중국민을 대상으로 공연한 연극 ‘전선의 밤’에 함께 출연했던 김자동(金滋東, 독립운동가 김의한(金毅漢)과 정정화(鄭靖和)의 아들)은 “이날의 스타는 (사촌)형 석동이었다. 형은 독창도 하고 합창대의 지휘까지 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작은 숙부에게 배운 탭댄스까지 보여줬다. 미소년으로 여자친구들에게 늘 인기가 있는 형이 이날도 인기를 독점한 듯하다”라고 회고하였다. 1943년 6월 김구의 지시로 충칭(重慶) 서북방 25리, 즉 자링강변(嘉陵江邊) 즈치구(磁器口)에 있는 국립조지인쇄직업학교(國立造紙印刷職業學校)에서 인쇄 기술을 배웠다. 이를 발판으로 『독립신문(獨立新聞)』의 중문판 속간이 가능해졌고, 1944년부터는 중국국민당 선전부 대적선전위원회와 합작으로 충칭 방송국을 통해 우리말 방송이 실시되는 데 기여하였다. 1945년에 들어 한·미 합동 군사첩보작전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훈련에 참여하여, 송면수(宋冕秀)·김용주(金容珠)·정일명(鄭一明) 등과 정보·파괴반에 배치되었다. 훈련 수료 후 한반도 침투 작전을 목적으로 한 국내정진대(國內挺進隊)가 조직되자 총지휘자 이범석(李範奭) 밑에, 평안도반·황해도반·경기도반을 지휘하는 제1지구대, 충청도반·전라도반을 지휘하는 제2지구대, 함경도반·강원도반·경상도반을 지휘하는 제3지구대로 편성되었다. 당시 이재현(李在賢)·민영수(閔泳秀)·이윤장(李允章) 등과 함께 본부 요원으로 편성되어 국내 진입을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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