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홍
金善洪1923. 12. 20 ~ 1998. 4.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충성회(오사카)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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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92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현 통영시) 도산면(道山面) 도선리(道善里)에서 태어났다. 김선수(金善洙)라는 이명이 있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금정선홍(金井善洪)으로 고쳤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 배달을 하며 오사카시 소재 니혼대학 오사카중학교(日本大學 大阪中學校)에서 공부하였다. 재학 중 전영수(田永秀)·남상순(南相淳) 등과 교류하며 한인 청년이 단결해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1941년 6월부터 1942년 12월까지 동지들과 30여 차례 회합하며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고 비밀결사인 충성회(忠誠會)를 결성하였다. 사람 인(人)자를 본떠 표식을 정했는데, 고금의 민족 해방 운동자를 떠올리며 ‘그도 사람, 나도 사람’이라는 신념을 담은 것이었다. 위아래로 적색과 녹색을 배치하고 중앙에 원을 그려 안에 연필과 창(槍)을 교차한 형태의 깃발도 고안했다.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하고자 일기를 쓰지 않기로 하는 등 매우 신중하고 비밀리에 활동하려 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청년 동지를 규합해 일제에 대한 민중 봉기를 일으켜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 이를 위해 국내·외에서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민하였다. 형제와 혈족들을 가장 확실한 동지로 삼고, 민족 차별 문제를 폭로해 항일 의식을 고양하고자 했다. 또한 재일 한국인 통제·관리 조직인 협화회 청년부에 잠입해 동지를 모집하기로 했다. 고향의 후배에게 야학을 개설하도록 하고, 자주 귀국해 시국과 사회 문제 강의를 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다. 국제 정세를 주시하며 국내 독립운동 세력에게 호응하거나, 일본과 소련이 전쟁을 하게 되면 즉시 귀국하여 청소년층을 지도해 독립 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동지들과 함께 단체 조직과 동지 규합 방법, 지금껏 독립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를 연구하고, 실력 양성과 독립운동에 힘쓰자고 결의하였다. 학교 졸업 후에는 교육 기관을 만들어 독립 지도자를 키워내자는 계획도 세웠다. 위와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42년 12월 16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3년 3월 12일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되기 전까지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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