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삼
金甫三미상 ~ 1908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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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출생 시기와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본명은 김상태(金相泰)이고, 이명은 김보삼(金補三)이다.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수입면(水入面) 오천리(烏川里) 주민으로 원래는 상당한 자산가였다고 한다. 1907년 8월 원주(原州)에서 창의한 원주진위대 출신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의 휘하 또는 그의 영향 아래 의병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휘하에 1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회양(淮陽)·통천(通川)·흡곡(歙谷, 현재 통천군 북부지역) 등 주로 강원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17일 김구학(金龜鶴), 이완보(李完甫) 등 총과 칼로 무장한 의병 수십 명을 인솔하고 흡곡군 읍내를 기습하였다. 먼저 순사분파소를 습격하여 순사용 검과 동복 등 군수품을 획득하였다. 이어서 일어학교를 공격하여 일본인 교사 모토지마 에이지元島榮次와 우편배달부 미야자키 하루키宮崎春喜 등을 처단하였다. 여기에서도 양총 1정을 획득하였다. 10월 20일에는 부하 80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통천 읍내를 공격하였다. 당시 통천 읍내에 주재하던 일본 순사와 장전점(長箭店)에서 파견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읍내 바깥으로 퇴각하였다. 퇴각 후에도 읍내 주변에 머물며 일본군을 계속 위협하여 읍내의 일본인과 일본군을 남쪽의 장전점으로 쫓아냈다. 곧이어 부대를 이끌고 서쪽의 회양군으로 가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10월 30일 부하 100명을 이끌고 회양 읍내를 공격하여 당시 읍내에 들어와 있던 일본군 수비병과 교전하였다. 전투 중 한인 순사 1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결국 후퇴하였다. 1908년 6월 의병 약 30명을 이끌고 흡곡군 내 각지를 돌며 의병항쟁을 지속하였다. 6월 6일 부하 현성팔(玄成八)·김순옥(金順玉) 등과 함께 흡곡 읍내를 공격하여 군아 및 주재소를 파괴하고 일어학교에 불을 질렀다. 읍내 부근에서 한인 순사 김응국(金膺國)와 이응섭(李應燮)을 붙잡아 서왕동(西旺洞)으로 데려가 처단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군에 피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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