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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寧燾

權燾

1889. 6. 8 ~ 195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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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權寧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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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흠치교(증산교)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흠치교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89년 6월 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오보면(烏保面) 태부동(太夫洞)에서 태어났다. 강일순(姜一淳)이 1900년대 초에 창시한 흠치교(吽哆敎)의 교도가 되어, 1920년대 초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쳤다. 흠치교는 강일순의 호를 따서 증산교(甑山敎)라고 불리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신도들이 외는 주문인 태을주(太乙呪)가 ‘훔치 훔치’로 시작하는 데서 훔치교(吽哆敎) 또는 흠치교(吽哆敎)라고 많이 불렸다. 한말 동학(東學) 사상과 운동에 기원을 둔 흠치교는 일제강점기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갔으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1920년 8월 일제의 통치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킬 것이라는 말을 듣고 향리의 태부동 뒷산에서 입도제(入道祭)를 지내고 흠치교 신도가 되었다. 또한, 그해 5월에 12인조에 가입하였던 권영구(權寧九)가 별도로 8인조를 편성하자, 여기에 가입하여 포교 활동을 하고 운동 자금(치성금) 10원을 납부하였다. 태부동 뒷산에서 김성술(金聖述) 등과 함께 8임회(八任會)를 개최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흠치교를 믿고 따르면 모두 독립된 국가의 국민이 되고 그 자격에 따라 관직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독립운동 자금을 거두는 일에 열성을 다하였다. 1921년 4월에 훔치교 교인으로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하던 가운데 신도들과 함께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여, 같은 해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면소(免訴)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그 이유는 경찰에 붙잡힌 직후 이미 즉결처분에 따라 이른바 경찰범처벌규칙 위반죄로 구류형에 처해 확정 재판을 거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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