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미상 ~ 1920.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 · ‘간도 15만 원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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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95) 호는 무산(武山)이고, 평안도 사람이다. 평양의 기독교 계통인 숭실학교(崇實學校) 재학 당시, 105인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검거될 위기에 처하자, 1912년 3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숭실학교는 1897년 평양에 설립된 중등교육기관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가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망명 이후 북간도를 거쳐 하얼빈으로 가서 그곳 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북간도 지역에서는 간민회(墾民會) 일본조사부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대동협신회(大同協新會) 회원, 동제회(同濟會) 평의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중 간민회는 애초에는 회명을 간민자치회(墾民自治會)라 하였으나 중국 당국이 ‘자치’라는 말을 삭제하도록 요구하자 간민회라 하였다. 회장에는 김약연(金躍淵), 부회장에 김영학(金永學), 총무에는 정재면(鄭載冕)이 각각 선임되었으며, 집행부는 법률·교육·교섭 등 12부를 두고 각 부에 책임간사를 두었다. 지방 조직으로 한인이 많이 사는 곳에 지방총회를, 그 아래에 지회를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교민에 관한 모든 사항을 자치적으로 해결하여 중국 관헌도 한인 문제는 간민회와 협의하였다. 또한, 교민에게 애국심을 고취하여 독립운동의 기반 조성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북간도 지방은 후일 항일 무장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북간도 지방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그 이후에는 대한국민회로 개편되었다. 북간도 국자가(局子街)에서 결성된 대동협신회는 계봉우(桂奉瑀)의 『오수불망(吾讐不忘)』을 간행하는 등의 민족단체였으며, 동제회는 간민회의 부속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서 경호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1919년 11월 북간도의 옌지(延吉)·왕칭(汪淸)·허룽(和龍)의 대표들이 모여 조직하였다. 본부는 옌지현 춘양향(春陽鄕)에 두고 있었다. 주요 간부로는 회장 구춘선(具春先), 부회장 서상용(徐相庸), 참사 최노륜(崔老侖)·이봉우(李鳳雨)·한상우(韓相雨)·정병호(鄭秉浩)·김규찬(金奎燦)·김병호(金秉浩)·진석오(陳錫五), 서무부장 김승국(金昇國), 재무부장 유찬희(柳讚熙), 총무·재정검사위원 김윤덕(金允德)·김치도(金致道)·박용극(朴容極) 등을 들 수 있다.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4개 현에 거주하는 40만 한국인을 기반으로 하여 조직된 단체로서 그 지회만도 80여 개소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한국민회는 백초구(百草溝)·국자가(局子街)·용정촌(龍井村)·두도구(頭道溝) 등의 상업 지역과 주요 도시 등을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아울러 대다수 구성원이 기독교 신자였으므로 기독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 등지에 기본 조직을 두고 있었다. 그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계통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로 일본 측에 이동휘(李東輝)·정안립(鄭安立)·전일(全一) 등과 함께 알려져 있었다. 한편, 대한국민회에서는 군사 활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고 따로 군사회를 두었는데 주요 간부를 보면 사령관 안무(安武), 부관 최익룡(崔翊龍), 제1중대장 조권식(曺權植), 제2중대장 임병극(林炳極), 향관(餉官) 허동규(許東奎)·김석두(金石斗), 군무위원 이원(李園)·마룡하(馬龍河)·최기학(崔起鶴)·마천룡(馬天龍) 등이었다. 대한국민회에서 통신부원 겸 중부경호부장(中部警護部長)으로 1920년 11월까지 활동하였다. 특히 1920년 7월 22일에는 옌지현 동불사(銅佛寺)의 시민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서 여관업자들은 ‘적의 숙박을 지금부터는 허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간도청년회(間島靑年會)의 발기에 참여하였으며, 의사부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함께 이 단체에서 활동한 주요 간부를 보면 회장 서성권(徐成權), 부회장 강백규(姜伯奎), 총무 김정(金精), 서기 나일(羅一)·강승범(姜承範), 간사 최병국(崔炳國)·김명수(金明洙), 의사부장 이광(李光), 의사부원 조환(趙煥)·강세헌(姜世憲)·주진무(朱震武)·김석관(金錫觀)·정기영(鄭基英)·최기학·김백우(金白祐)·정동호(鄭東浩)·김희수(金熙洙)·강상모(姜尙模)·이규석(李圭錫)·송창의(宋昌義)·유창협(兪昌協)·이한규(李漢奎), 재무부장 장원준(張元俊), 편집부장 김규찬, 운동부장 임국정(林國楨), 강연부장 진석오(陳錫五) 등을 들 수 있다. 1920년 1월에는 청년단장을 맡았다. 1920년 2월에는 소위 ‘간도 15만 원 사건’에 참여하였다. 이 사건은 북간도 지역에서 철혈광복단원(鐵血光復團員)으로 활동하던 최봉설(崔鳳卨)·윤준희(尹俊熙)·한상호(韓相浩)·임국정·김준(金俊) 등이 1920년 1월 일제의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조선은행 룽징(龍井) 출장소에 보내는 송금을 ‘탈취’하기로 결의하고, 룽징 동량 어귀에서 현금 수송마차를 습격하여 15만 원이라는 자금을 ‘탈취’한 거사였다. 그들은 탈취한 돈으로 체코제 무기를 사려고 러시아로 떠났으나, 23일 목적지인 신한촌(新韓村)에 도착하여 그곳 요원들과 접선하여 대기 중에 반역자 엄인섭의 밀고로 계획이 무산되었다. 이 사건에 윤준희·임국정·최봉설 등과 함께 연루되어 이후 러시아 연해주와 간도의 오지로 도피·은신하다가 1920년 11월경 옌지현 태평구(太平溝) 용포동(龍浦洞) 부근에서 카노(加納) 기병연대(騎兵聯隊)에 체포되어 옌지현 동불사(銅佛寺) 북구(北溝)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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