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순흠
高順欽1893. 1. 14 ~ 1977. 11.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청년단
- · 임시정부
- · 조선노동공제회
- · 남흥여명사
- · 조선무산자사회연맹
- · 대판조선인여공보호연맹회
- · 대판제주항해조합
- · 대판기업동맹기선부
- · 재일본조선거류민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주해녀조합설립운동
- · 자주운항운동(일본)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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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3년 1월 14일 전라남도 제주군 조천면(朝天面) 조천리(朝天里)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자유(自由), 호는 죽암(竹岩)이다. 아버지는 성균관(成均館) 교수(敎授) 능봉(菱峰) 고성겸(高性謙)이며, 사회주의 운동가 고경흠(高景欽)의 8촌 형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의신학교(義信學校)를 거쳐 1912년 제주농업학교(濟州農業學校)를 제1기로 졸업한 뒤, 1914년 3월 경성전수학교(京城專修學校)를 졸업하였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이원식(李元植)·남형우(南亨祐) 등 80여 명이 국권 회복을 목표로 조직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11월 전남 구례(求禮) 출신의 김규열(金圭烈)로부터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운동 관련 「포고문(布告文)」과 「격문(檄文)」을 받아 전라도 일원에 배포하였다. 이 포고문과 격문은 경남 진주(晋州) 출신의 황종화(黃鍾和)가 임시정부 요원 강태동(姜泰東)·이정규(李丁奎)에게 받은 것으로, 1919년 임시정부가 발행한 「일제의 관공리인 동포에게」·「포고 제1호 남녀학생에게」·「포고 제2호 상업에 종사하는 동포에게」 등이었다. 1920년 4월 3일 조직된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의 발기인으로 참가하여 양제박(梁濟博)과 함께 선언문과 강령, 그리고 헌장 초안 작성을 담당하였다. 1921년 3월 조선노동공제회 제3회 정기총회에서 윤덕병(尹德炳)·신백우(申伯雨) 외 56인 간사의 한 사람으로 임원이 되었으며, 1922년 4월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한편, 1922년 8월에는 조선노동공제회 내의 서울청년회와 북성회(北星會) 간의 내분으로 조선노동공제회 회관의 간판과 서류를 불태우고 상해(傷害)를 입힌 혐의로 2주간 구속되었다. 또한, 고향인 제주도에 대한 관심도 깊어 제주해녀조합설립운동(濟州海女組合設立運動)에 참여하였으며, 1928년 8월 제주흥학회(濟州興學會)가 주최한 강연회에 참가하여 「우리의 전도(前途)」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24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에 입각한 사상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3월 최선명(崔善鳴)이 오사카(大阪)에서 조직한 남흥여명사(南興黎明社)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6월 최선명·김태엽(金泰燁) 등과 함께 조선무산자사회연맹(朝鮮無産者社會聯盟)을 결성하였다. 그해 7월에는 대판조선노동동맹회(大阪朝鮮勞動同盟會)·관서조선3·1청년회(關西朝鮮三·一靑年會)·대판조선유학생학우회(大阪朝鮮留學生學友會) 등 3개 단체와 조선무산자사회연맹 공동으로 조선인문제대회(朝鮮人問題大會)를 개최하는 한편, 조선인여공보호연맹회(朝鮮人女工保護聯盟會)를 조직하여 여공들의 처우 개선과 분쟁 해결에 노력하였다. 1925년 여름에는 조선수해이재민구제운동(朝鮮水害罹災民救濟運動)의 의연금 모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조선대수재동포구원단(朝鮮大水災同胞救援團)을 조직하여 구원연설회(救援演說會)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28년 12월에는 자주운항운동(自主運航運動)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제주인이 중심이 되어 제주를 위해 전개한 민족 운동이다. 1923년 12월 15일부터 제주와 오사카 사이에 직항로가 개설된 이래, 이 항로는 일본인 선박업자들에게는 황금노선으로 인식되었다. 1928년 이 항로를 독점적으로 운항하던 조선우선(朝鮮郵船)과 니기기선(泥崎汽船)은 뱃삯을 전격적으로 대폭 인상하였다. 1928년 4월 제주도민들은 자유도일(自由渡日)과 운임 인하를 요구하는 대회를 열고, 뱃삯을 내리도록 선박회사에 요구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이에 같은 해 12월 제주항해조합(濟州航海組合)과 기업동맹기선부(企業同盟汽船部)를 설립하고, 제주와 오사카 사이의 독립 항로를 개설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고순흠 등 14인으로 설립된 기업동맹기선부는 1928년 12월 1일부터 임대한 순길환(順吉丸)과 제2북해환(第二北海丸)을 첫 출항하였다. 그러나 조직적 기반이 약했던 기업동맹기선부는 곧 경영난에 빠졌고, 자주운항운동도 침체되고 말았다. 1946년 2월 4일 개최한 기미독립선언 기념 전국대회 준비위원회(己未獨立宣言紀念全國大會準備委員會)의 연락부 준비위원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달 10일 개최된 조선독립동맹(朝鮮獨立同盟) 제1회 환영회에서 재일본조선인연맹(在日本朝鮮人聯盟) 대표로 환영사를 하였다. 그해 10월 3일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在日本居留民團)이 결성되자, 박열(朴烈)이 중앙총본부 단장을 맡고, 자신은 중앙총본부 의장을 맡았다. 1947년 10월 1일 재일본거류민단 부단장에 선임되어 1949년 6월까지 재임하면서 일본에 사는 한국 교포들의 권익 옹호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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