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구철회

具喆會

1915. 7. 26 ~ 1965. 1. 2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구철회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수원(水原)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죽마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5년 7월 26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에서 태어났다. 수원공립보통학교와 중앙중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東京)의 주오대학(中央大學) 예과에 입학하였다. 1939년 주오대학 예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릿쿄대학(立敎大學)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1940년 3월 릿쿄대학 재학할 당시 도쿄에서 민족정신이 투철한 동지 15명과 비밀결사 죽마계(竹馬契)를 조직하였다. 처음 니혼대학(日本大學) 졸업생 안병익(安秉翊)과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재학생 김사복(金思宓)이 한국 독립을 위해 하나의 결합체를 결성하여 장래의 독립 활동을 전개하자고 제의하였다. 조직체는 한국의 ‘계’ 전통을 살려 ‘계’와 같은 방식의 동지적 단결 등을 제의하자 주오대학 이덕창(李昌德) 등과 함께 뜻을 같이하여 참가하였다. 이후 동지들을 규합하여 수차례 모임을 갖고 때가 오면 일제히 봉기하여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주요 기본사항을 결정하였다. 단체 명칭을 ‘죽마계’로 정하고 계장(契長)으로 연장자 김덕순(金德順)을 추천하는 한편, 본부는 서울, 지부는 도쿄에 두고, 매년 7월 18일 서울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며, 계에 대한 모든 비밀을 유지할 것 등 15개 항목을 합의 결정하였다. 같은 해 7월 18일 서울에서 제1회 총회를 열고 자금 획득 및 임원 개선 등을 논의하였는데, 본부를 도쿄에 두기로 결정하고 계장 김사복, 도쿄본부위원 이창덕·이해룡, 서울지부위원 안병익·안종식(安種植) 등을 선임하였다. 1941년 4월 새롭게 연구부와 사업부를 설치하고 연구부 책임자 김사복, 사업부 책임자 안병익을 임명하는 등 조직을 정비하였다. 연구부는 민족 독립운동의 이론적 체계를 연구하고, 사업부는 자금 획득 및 실천적 활동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이때 이봉하(李鳳夏)·이일동(李一東) 등과 함께 연구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1941년 6월 일본 경시청에 발각되어 죽마계 전원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다. 1943년 3월 30일 도쿄형사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한성일보』 정경부장, 『정계춘추』·『국제뉴스』 사장, 『자유신문』 상무이사 등 언론계에서 활동하다가 정계에 투신하여 민주당 중앙위원, 선전부 차장,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5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경기 용인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2월 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