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강대년

姜大年

1894. 3. 4 ~ 1929. 1. 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대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남 담양(潭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담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광주군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4년 3월 4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수북면(水北面) 개동리(開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향사리(鄕社里) 숭일학교(崇一學校)의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에 있던 나주군(羅州郡) 나주면(羅州面)의 김복현(金福鉉)은 ‘경고 우리 이천만 동포’라는 격문 100장, 최팔용 외 10명이 연명한 선언서 150장, 조선의 독립을 노래한 독립가(獨立歌) 100장, 국민대소집청원서 10장을 전남에 배포하라는 부탁을 받고 광주로 내려왔다. 1919년 3월 6일 김복현은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있던 김강(金剛)과 상의하여 이에 동참하기로 결의하고 송흥진(宋興眞)·서정희(徐廷禧),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炳俊) 등과 모의하였다. 그 결과 학교 생도와 시위 찬동자가 단체를 이루어 3월 10일 광주 큰 시장에 모여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광주 시내를 행진하기로 하였으며, 일반 군민과 숭일학교 학생, 수피아여학교의 여학생도 만세 시위운동에 동참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김복현·김강 등은 전남 광주군 광주교 아래 강가 모래밭에 모여 수백 명 군중과 조선 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운동의 개시를 선언하고,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의 교사와 학생 수십 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다. 송흥진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지휘하고 김복현 등은 군중 1,000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광주 시내를 행진하였다. 숭일학교 교사로 이 시위에 적극 동참하여 시내를 행진하였으며, 그날 오후 출동한 경찰에 의해 시위가 진압되는 과정에서 다른 시위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3월 10일 광주 지역 시위로 이달근(李達根)·최영균(崔暎均) 등 80명의 시위 주창자들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홍순남(洪順南) 등 5명과 함께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의 형량대로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